텅 빈 과수원으로 쌀쌀한 겨울 바람이 쓸고 갑니다.

아무일도 없었던것 처럼 제 할일을 다 하고 긴 휴식의 시간을 맞이한

나무들처럼 단잠에 젖어든 모습이 차라리 편안해 보입니다.

명품,

어느 신문에 올려진 칼럼에서

"명품이란 단지 가격이 비싼것을 명품이라고 말할수 없다.

모름지기 명품이란 그것을 만든 이의 혼이 깃든 차별화된 제품을 말한다" 라고 써여 있었습니다

맞습니다.제가 생산하는 단감에는 저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농업인이라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이겠지만 저 또한 혼이 깃든 명품을 만들기 위해

정성과 사랑을 다해 농사를 짓습니다.

행여 밤새 이상이 없는지 눈을 뜨면 과수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두근두근 떨려 오는 그 심정을

느껴 보셨는지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목에 혼을 불어넣어 연초록 새싹이 돋아나고

하이얀 감꽃이 주절주절 내 살아온 이야기처럼 피어나면 바쁜 발걸음이 더 빨라집니다.

긴 장마와 폭염에도 꿋꿋이 버티고 단맛을 가득채워 알이 탱글탱글 영글어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면 온 과수원엔 단풍이 들지요.

가을은 그렇게 긴 시간을 버텨온 수고로움으로 내곁으로 다가와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가을은 차라리 아픔이었습니다.

밤사이 기온이 너무 많이 내려간것 같아 걱정이 되어 과수원에 오르니

발갛게 물이들어 수확을 기다리던 단감들이 밤사이 추운 냉기에 얼어 차갑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행여 햇살이 퍼지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긴 아침시간을 보냈었죠.

그렇게 아침은 내게로 다가왔고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난히도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 쬐어 지난밤이 추웠었는지 생각할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떡해야할지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식구들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과수원에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확이 시작된지 채 몇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 내 눈앞에

냉정한 현실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행여 괜챦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단감나무곁으로 발걸음이 옳겨지고

이리저리 만져보며 내 맘속엔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동안 단감으로서는 이 나라 최고가 되기위해 쌓아왔던 그 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언론에서 밤사이 급강하 한 기온으로 남부지방 과수원엔 피해가 막심하다는 이야기들이

?P아져 나왔습니다.

그냥 조금 피해를 보았나 보다 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어떡하느냐고 힘내라고 너도나도 나서서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왜 일찍 수확을 하지 않았냐고 남들은 거의 수확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뭐했냐는 속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렸나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피해를 보게된것은 70%정도의 숙기만 지나면 수확을 하는 일반 농업인들에 비해

수확시기가 많이 늦은 것이 제일 큰 까닭입니다.

하지만 나무에서 거의 90%의 숙기를 지나야만 제대로된 단감맛을 느끼고 색택이나 당도에서도

어디 내어 놓아도 차별화를 시킬수가 있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고

수확을 할수는 없었습니다.그것은 나의 농사 철학이었습니다.

우리집은 초상집 같이 우울한 분위기로 식구들은 넋이 빠져 일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단감을 따 내지 않으면 내년 농사를 기약할수 없기에 인력동원을 하지 않으면 않되었습니다.

전화통이 몸살이 날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수백명의 군인들과 전경들이 인력동원이 되어

명품이 될뻔한 단감들은 모두폐기처분 되었습니다.

내 생에 잊지못할 기억을 안겨준 가을이 원망스러웠지만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준 마음들이 있어

다음을 기약할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혼을 불어 넣어 또 다시 명품만들기에 도전해야 겠지요.

그런 아픔이 다시 찾아 온다해도 제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픔과 행복을 동시에 안겨준 2007년이 저물어갑니다.

지난 11월14일 세계일보사에서 주최한 세계농업기술상 기술부분개인 우수상을 받고

정말이지 농업인의 한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가슴뿌듯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을 준것에 지나지 않고 한사람 한사람 그 아픔까지도 어루만져 주신

세계일보사 이동환사장님이하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맛이 사라져버린 언 감을 드신분들은 차라리 제 눈물을 드신것입니다.

축하해준 많은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엊그제 강릉에서 열린 전국 팜스테이 협의회에 다녀오니 귀하신 분들이 다녀 가셨더군요.

가슴이 뭉클해진 따뜻함을 나누어준 그분들에게 마음가득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 겨울 찬바람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한발 앞서서 내디딜 용기가 있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