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샘골호박농원 농장주 최근명·이혜란 부부.



장기저장법 개발로 최상품 연중 공급
인터넷 판로개척 … 年 3억 매출 '돌풍'


연재기사 농업·농업인



농업·농업인 ⑫ 참샘골 호박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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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호박 하나로 부농을 이룬 농업인이 있다.

틀에 박힌 옛 방식에서 벗어나 선진농법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와 발상의 전환으로 판매에 나선 것이 비결이다.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서 참샘골호박농원을 운영하는 최근명씨(55)는 지금의 호박 하나만으로 연 3억원의 매출을 올리기까지는 몇 차례의 고비를 숨 가쁘게 넘어야 했다.

최씨는 30여년 전인 1970년대 중반 군 복무시절 우연히 젓소목장에서 한 노인이 젖짜는 모습에 매료돼 제대후 인생의 승부를 낙농업에 맞췄다. 최씨의 선택이 맞아 떨어진 것일까? 처음 6마리의 송아지를 가지고 시작한 젖소목장은 이후 젖소 50두에서 하루 300kg의 우유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더 생산하지 못해 못 팔 정도로 수입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 우유만 짜서 팔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안될 것이라는 최씨의 생각도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 수입개방으로 인해 싼수입 우유가 밀려오면서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최씨는 낙농업에서 손을 떼기로 하고 젓소목장의 초지를 이용할 방안으로 토종닭 방사를 생각해 냈다.

1993년부터시작한 토종닭 방사는 넓은 목장에서 키운 만큼 활동성이 많아 육질이 여느 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한창 많을 때는 8000수까지 닭을 사육했고 상품도 이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최씨의 이런 생각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오프라인 시장의 유통에 대한 대책을 세워두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최씨는 우렁이 양식 사업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시 유통 부분이 여의치 않아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후 지역주민들과 함께 느타리버섯 작목반을 구성 그동안의 부진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으나 여러해 동안 버섯재배가 연속되면서 버섯재배의 아킬레스인 연작피해를 보게 됐고 무균 최첨단 재배사 없이는 버섯사업도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최씨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1997년 어느날 봄 마지막 버섯판매를 위해 서울 가락동시장으로 올라간 최씨는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황금덩이의 늙은호박을 만나게 된다.


늙은호박 하나로 부농을 이룬 농업인이 있다.

틀에 박힌 옛 방식에서 벗어나 선진농법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와 발상의 전환으로 판매에 나선 것이 비결이다.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서 참샘골호박농원을 운영하는 최근명씨(55)는 지금의 호박 하나만으로 연 3억원의 매출을 올리기까지는 몇 차례의 고비를 숨 가쁘게 넘어야 했다.

최씨는 30여년 전인 1970년대 중반 군 복무시절 우연히 젓소목장에서 한 노인이 젖짜는 모습에 매료돼 제대후 인생의 승부를 낙농업에 맞췄다. 최씨의 선택이 맞아 떨어진 것일까? 처음 6마리의 송아지를 가지고 시작한 젖소목장은 이후 젖소 50두에서 하루 300kg의 우유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더 생산하지 못해 못 팔 정도로 수입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 우유만 짜서 팔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안될 것이라는 최씨의 생각도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 수입개방으로 인해 싼수입 우유가 밀려오면서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최씨는 낙농업에서 손을 떼기로 하고 젓소목장의 초지를 이용할 방안으로 토종닭 방사를 생각해 냈다.

 

▲ 참샘골호박농원이 생산하고 있는 황토맷돌호박은 참샘골의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속의 황토땅에서 유기질 퇴비와 키토산 농법으로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이다. 참샘골 농장에서는 연간 300t의 황토맷돌호박을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습니다. 참샘골 가족들의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 낸 황토맷돌호박과 호박죽, 호박즙, 호박국수 등 호박으로 생산한 다양한 가공품을 판매하고 있다.

1993년부터시작한 토종닭 방사는 넓은 목장에서 키운 만큼 활동성이 많아 육질이 여느 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한창 많을 때는 8000수까지 닭을 사육했고 상품도 이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최씨의 이런 생각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오프라인 시장의 유통에 대한 대책을 세워두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최씨는 우렁이 양식 사업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시 유통 부분이 여의치 않아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후 지역주민들과 함께 느타리버섯 작목반을 구성 그동안의 부진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으나 여러해 동안 버섯재배가 연속되면서 버섯재배의 아킬레스인 연작피해를 보게 됐고 무균 최첨단 재배사 없이는 버섯사업도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최씨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1997년 어느날 봄 마지막 버섯판매를 위해 서울 가락동시장으로 올라간 최씨는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황금덩이의 늙은호박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늙은호박은 가을에 수확하게 되는데 전국에서 일시에 호박이 많이 나오다 보니 가격은 형편없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약 가을에 수확한 호박을 봄이나 여름에 먹을 수 있도록 저장기술만 갖고 있다면 부가가치는 몇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옛날 어린시절 할머니께서 가을에 호박을 딴 후 사랑방 시렁에 올려놓고 이듬해 봄이되면 호박범벅을 만들어 주던 생각을 떠올린 최씨는 이러한 전통 저장방식을 이용한 방법을 생각한 것이 버섯재배사 다단식균상이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최씨는 보다 많이 호박을 저장할 수 있도록 버섯재배사 균상선반을 리모델링한 뒤 호박 장기저장법 연구에 돌입, 10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온도와 습도,환기 등 3박자를 갖춰야만 호박을 오래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 최씨는 온도 12~15도, 습도 60~65%, 에틸렌가스농도 0.0ppm 이하 등의 환경이 마련됐을 때 호박을 85%까지 장기저장이 가능하다는 결과물을 얻어냈다.

당시 가을 호박 한개에 2000원 정도 했다면 봄에 내놓는 호박은 1만원에서 2만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최씨는 호박 생산 후 이듬해 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내놓았으나 문제는 유통상인들 이었다.

일단 제품이 확실하고 봄에 호박이 있다는 희소성까지 합쳐진 만큼 가격을 쳐주지 않고 반대로 소비자들에게는 비싸게 파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동안 생산에는 성공했으나 판로확보 유통실패로 거듭 쓴 잔을 마신 뒤라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최씨는 중간 유통마진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끝에 인터넷을 활용한 전자상거래로 눈을 돌렸다. 소위 컴맹에 가까웠던 최씨는 당시 중학생인 아들에게 홈페이지 만들기를 비롯한 운영 전반에 걸친 사항을 배운 후 '참샘골'이란 브랜드를 특허청에 등록하고 2000년 농촌진흥청에서 무료로 농업인 1호 홈페이지를 구축받아 각종 포털사이트에 등록한 후 고객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1년이 다 되도록 판매를 문의하거나 사가는 고객이 한 명도 없었다. 정말로 안 되는 것인가 하던 어느날 첫 고객이 들어왔다. 꼬박 1년이 다 되어 들어온 고객을 맞은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고 좋았다.

어렵게 마수거리에 성공한 최씨는 호박은 그때부터 순항에 돛을 달게 됐고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이 언론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창에 호박을 치면 유일하게 나오는 곳이 '참샘골호박농원' 이었고 한창 불어 닥친 웰빙 바람과 맞아 떨어지면서 언론의 접근도 잦아졌다. 언론 바람을 탄 참샘골농원에는 호박을 사기 위한 고객들의 문의가 쇄도했고, 이는 고스란히 홈페이지 판매로 이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단순하게 잘 생긴 호박만을 포장해 판매하던 최씨에게 고객들은 새로운 상품을 주문하고 또 아이디어를 주문했다. 어느날 여자고객 한 분이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그냥 호박도 좋지만 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가공상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항상 곁에 두고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호박제품을 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호박미인 가공식품 이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최씨는 못생긴 호박을 이용한 가공식품을 개발키로 하고 2003년 '참샘골식품' 호박 가공사업에 뛰어들어 호박이 넝쿨째! 건강이 넝쿨째! 호박웰빙상품 대중화를 선언했다. 특히 최씨가 심혈을 기울인 상품은 '고구마호박죽'으로 서산시로부터 특화사업 지원금을 받고, 자신의 돈을 합쳐 호박죽 자동화시스템 생산 설비를 마련했다.

인터넷 초창기 호박을 판매하던 최씨의 메뉴는 가공식품으로 고객들의 선택의 폭이 다양화되면서 이제는 호박과 가공식품의 판매가 1대 9에이를 만큼 가공식품의 판매실적이 절대적이다. 단순한 호박만의 판매가 1단계였다면 가공식품으로의 확대를 넓힌 2단계에 지금의 완전한 농장의 모습을 갖춘 3단계는 또 한번 고객들이 던져준 아이디어 덕이었다.

2003년 말 한 고객이 또 제안을 해왔다. 호박과 가공상품을 사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호박농장에 직접 와서 호박체험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호박을 직접 따보고, 또 호박요리도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제 고객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고객들의 취향에 맞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4년 농협중앙회 회포팜스테이 지정과 서산시농업기술센터 전통음식체험장 지정, 2005년 농림부 녹색농촌체험마을 지정 등 고객들이 찾아 오는 체류형 체험농장과 마을에는 최신시설의 다목적 체험관을 갖췄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부농의 꿈을 이루기까지 최씨의 부단한 노력은 대내 ·외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2001년 서산시 신지식인 1호를 시작으로 충남 농어촌발전대상 수상, 2003년 농협중앙회 새농민 본상 수상 및 농립부장관상 표창, 2005년 충남농업테크노파크 우수농기업 선정, 2008년 농업인홈페이지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 등 수없이 많은 상을 받으면서 이제 부농을 이룬 대표적 지역 신지식농업인으로 발돋움 했다. /서산=박상록기자